낯선 도시에서의 첫날은 언제나 조금은 설렙니다. 특히 해가 지기 시작한 호이안의 거리에는 묘한 기대감이 떠돌고 있었죠. 베트남 중부, 다낭에서 약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이 도시는 작은 골목 하나, 건물 하나조차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줍니다. 호이안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닌, 감정이 천천히 스며드는 곳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그 감성 가득한 장소들을 중심으로 호이안의 매력을 나눠보려 합니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 호이안 야경의 마법
호이안은 밤이 되면 진짜 얼굴을 드러냅니다.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면, 거리 전체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바뀝니다. 강을 따라 수놓인 수천 개의 등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고요한 강물 위로는 종이배를 띄우는 관광객의 소원이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처음 이 장면을 본 순간, "와..."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통 음악, 강변의 등불,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점들은 어느새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호이안의 야경은 단순히 '인생샷'을 위한 배경 그 이상입니다. 그 안에는 오래된 도시의 정서, 여행자의 감정,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며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호이안의 밤은 특별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습니다.
고요한 시간 속을 걷다, 호이안 올드타운
호이안 올드타운은 단순히 오래된 동네가 아닙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16세기부터 이어져 온 다채로운 문화가 골목마다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노란색 벽면과 나무 창틀, 퇴색된 벽화는 도시가 살아온 시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무심한 듯 걸었던 작은 골목 끝에서 뜻밖의 카페를 만나기도 하고, 현지 주민들이 집 앞에 놓아둔 화분들 사이에서 여행의 피로가 스르륵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걷다 보면 ‘떤끼고택’, ‘풍흥고가’ 같은 전통가옥이 등장하는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오래된 가구와 구조물 사이에서 베트남의 옛 삶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마주한 한 노부부의 미소, 조용히 흘러나오던 전통 음악, 그리고 스쳐 지나간 여행자들과의 눈빛 교환까지. 호이안 올드타운은 시간과 감정이 함께 흐르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관광이 아닌, 그 도시의 숨결을 따라 걷는 일이었습니다.
호기심과 향기로 가득한 밤, 호이안 야시장
올드타운에서 조금만 걸으면 호이안 야시장에 도착합니다. 등불이 가득 걸린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상점들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볼거리와 향기로 정신이 바빠집니다. 각양각색의 수공예품, 알록달록한 등불, 향신료 가득한 길거리 음식들이 눈과 코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특히 길거리에서 파는 꼬치구이나 반쎄오(베트남식 전)는 부담 없는 가격에 현지의 맛을 느낄 수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습니다. 야시장의 분위기는 북적거리지만 결코 시끄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에서 흥정을 하고, 가게 주인들은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습니다. 그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자들은 그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녁이 깊어지면, 등불 상점 앞에 선 채로 오랜 시간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 야시장은 단순한 쇼핑의 공간이 아니라, 호이안이라는 도시의 리듬과 감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기념품 하나에도 이야기와 손맛이 담겨 있었고, 그것이 호이안만의 온도였습니다.
호이안은 크고 화려한 관광지보다 작고 진심 어린 순간들이 더 많은 도시입니다. 그 거리를 걷고, 등불을 바라보고, 야시장의 냄새를 맡는 순간순간이 여행의 중심이 됩니다. 여행은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호이안은 오히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기에 딱 좋은 도시였습니다. 마음속에 작은 여유를 품고 떠날 수 있는 곳, 낯선 골목에서 익숙한 감정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호이안입니다.